공공장소에서 떠드는 아이를 본 스토아 철학자는 어떻게 반응했을까?
카페에 앉아 조용히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있는데,
옆자리에서 아이가 큰 소리로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.
컵을 치고, 의자를 돌리고, 괴성 비슷한 소리를 낸다.
그 아이의 부모는 스마트폰을 보며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.
이럴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.
“요즘 부모들 왜 저래?”
“애도 애지만, 부모가 더 문제야.”
하지만 문득 상상해본다.
이 장면을 고대 스토아 철학자가 본다면, 어떻게 반응할까?
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: “놀라지 말라, 세상은 원래 그러하니”
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『명상록』에서 이렇게 말했다.
“오늘도 무례하고, 오만하고, 시끄러운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.
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.
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본성이기 때문이다.”
그렇다면 그는 떠드는 아이를 보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?
“아이는 떠들기 마련이다.
그 아이는 본성대로 행동하고 있다.
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소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다.”
그는 화내지 않았을 것이다.
오히려 자신의 인내심과 평정심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로 여겼을지도 모른다.
🧠 세네카: “분노는 잘못된 기대에서 온다”
세네카는 『분노에 대하여』에서 분노란 “세상이 내 기대와 다르게 흘러갈 때 생기는 감정”이라고 했다.
그렇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.
“나는 조용한 공간을 기대했다.
그러나 지금 현실은 다르다.
그렇다면 분노해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니라,
조용할 것이라고 단정 지은 내 고정관념이다.”
세네카에게 중요한 것은 외부 상황이 아니라, 그에 대한 나의 판단과 감정이다.
🧠 에픽테토스: “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”
에픽테토스는 『담화록』에서 강조한다.
“너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.
그러나 너는 너의 반응을 바꿀 수 있다.”
그는 시끄러운 아이를 제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것이다.
그리고 이렇게 자신에게 말했을지 모른다.
“그 아이는 내 통제 밖에 있다.
하지만 내 감정은 내 통제 안에 있다.”
📍 스토아 철학은 아이를 방관하라는 말이 아니다
그렇다고 해서 스토아 철학이 ‘모든 걸 참으라’는 것은 아니다.
책임 있는 부모라면 아이를 훈육해야 한다.
다만 중요한 것은,
우리가 타인을 비난하기 전에, 스스로의 태도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점이다.
무례한 부모를 보고 내가 무례해진다면,
결국 나 역시 이성을 잃은 또 다른 누군가가 될 뿐이다.
🌿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?
아이의 소란을 마주한 그 순간,
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.
- 함께 짜증을 내는 어른이 될 것인지,
- 아니면 조용히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어른이 될 것인지.
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,
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던 "자기 수양의 시간"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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